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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단군이 이 땅에 고조선을 건국한 이후 가장 큰 사회적 혼란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1945년 해방 이후 1990년대 초까지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하며 군사독재와 재벌의 정경유착에도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1993년 문민정부가 수립된 이후 경제력을 발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가입하며 자축의 샴페인을 터트린 결과는 참혹했다.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외치며 한국식 자본주의의 표본을 정립했다는 자부심도 무참히 깨졌다.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도전한 정보화 물결은 아날로그 사회를 디지털 사회로 전환 시키며 새로운 변화를 유도했다.산업화의 부작용에 대한 반성도 없이 도입한 디지털 기술은 ‘승자독식(Winner-Take-All)’의 일상화와 양극화라는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디지털 사회에서 경제교육의 필요성을 더욱 커졌지만 공교육이나 사교육 모두 외면했다. ◇ 경제부흥에 초점을 맞춘 보수 정부가 경제를 더욱 파탄 내2008년 출범한 이명박정부(2MB)는 이른바 사회주의 사상에 물든 학생들을 교화시킨다며 ‘경제교육’을 강화했다. 학교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원리를 가르치고 좌파가 도입한 각종 정책을 거부했다. 보도나 계단에서 일상화된 ‘좌측통행’ 대신에 ‘우측통행’을 도입했다.2MB정부는 건전한 시장 경제 질서를 수호하는 대신에 돈만 벌면 된다는 천박한 황금만능주의를 퍼뜨려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원 외교, 4대강 사업 등은 자본주의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은 망국적 정책이라며 지탄받았다.글로벌 금융위기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박근혜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며 경제에 부담을 키웠다. 건설업과 대기업에 우호적인 경제정책은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얻은 문재인정부도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경제에 주름살을 더욱 늘렸다.이른바 팬데믹 경제의 혼란을 공격하며 권력을 되찾은 보수 윤석열정부는 여소야대의 정국이라는 핑계를 대며 허송세월을 보내느라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보수는 시장 경제를 중시하고 ‘경제에 강하다’는 논리를 무너뜨린 정부는 보수 세력인 이명박·박근혜·윤석열 모두 포함된다.자본주의 시장 경제는 16~18세기 신대륙의 발견과 신항로의 개척으로 시작된 중상주의에서 발원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상인을 중심으로 18~9세기 산업자본가 탄생하며 근대 자본주의가 확립됐다. 소주의 사본이 산업을 독점하고 경제 권력의 횡포를 남용한 결과는 1929년 대공황으로 귀결됐다.독과점의 폐해와 자본가의 과도한 이윤 추구는 국가의 시장 개입을 유도했다. 특히 국가의 핵심 산업이나 인프라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실제 대공항 이후 우리나라 일부 보수정권이 주장한 완전한 의미의 자유 시장 자본주의는 종말을 고했다.그럼에도 기득권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팽배해 있다. 평범한 일반인 뿐 아니라 대학에서 경제학을 배운 전공자조차도 경제원리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초중고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조차도 알기 쉽게 실물 경제를 가르치지 못한 실정이라 현실적인 경제교육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학생신문이 지향하는 디지털 시대의 경제교육 비전과 미션 [출처=iNIS]◇ 디지털 경제 부흥시키려면 ICT·바이오 기술에 투자 확대해야자본주의가 한반도에 본격 상륙한 지도 80년이 흘렀지만 시장 경제를 올바르게 이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은 국가 차원의 불행이다.우리나라가 공산주의를 도입하거나 온전한 사회주의 국가로 이행될 가능성은 낮으므로 누구나 시장 경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돈을 벌거나 출세하는 데 유리하다.박근혜정부는 창조경제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명확한 정책은 내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창조경제라는 용어 자체의 잘못됐다거나 효용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박근혜정부가 ‘정부 3.0’을 추진하다 실패한 이후 2016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정부 4.0’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윤석열정부가 2023년 ‘신성장 4.0 로드맵’을 발표하며 ‘정부 4,0’이라고 우겼지만 ‘정부 3.0’과 차이점을 제시하지 못했다.‘정부 4.0’ 시대는 인공지능(AI)과 더불어 빅데이터(Big Data), 가상현실(VR), 로봇(Robot) 등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ICT)과 바이오 기술(Biotechnology)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이런 점에서 ‘정부 4.0’ 시대의 경제교육은 디지털 프로슈머(Prosumer) 양성, 건전한 경제질서 확립, 수요 기반형 교육이 요구된다.경제교육은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 구축, 경제교육 내용의 확대, 경제·교육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경제의 핵심 인프라 구축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재능을 갖춘 디지털 생산자(producer), 디지털 상품의 상품적 소지를 주도할 디지털 소비자(consumer), 수요 창출과 거래 활성화를 포용할 디지털 시장(market)으로 구성된다.경제교육 내용의 확대는 경제 일반 및 금융제도, 정보격차 해소를 통한 소비활동, 진로 교육을 통한 국가인재 양성 등으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경제·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글로벌 경제구조의 고착화, 스마트경제 질서의 확립, 평생학습 진흥과 맞춤 콘텐츠 개발 등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 4대 혁신으로 경제교육 패러다임 전환 가능해1980년대 이후 세계 경제가 통합되고 동기화되며 국가와 기업의 역할이 재정립됐다. 기업은 정부정책과 공조를 강화해야 하고 정부는 시장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도록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논리였다.학생신문은 디지털 사회에서 경제교육을 확산하기 위해 평생 학습을 원하는 수요자를 대상으로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 양질의 교육 콘텐츠 준비와 활용, 전문 교육 인력의 양성이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고자 한다.경제교육의 수혜자는 초중고생, 대학생, 일반 직장인, 은퇴자, 학부모, 교사, 시민단체, 교육기관, 기타 단체 등으로 5200만 전 국민이 모두 포함된다. 평생교육과 평생학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지도 수십 년이 흘렀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미진한 편이다.수요자에 대한 맞춤형 콘텐츠가 부족하고 실용 교육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도 교육기관이나 교육자의 한계로 지적된다. 고리타분하고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콘텐츠로 무장한 교육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대대적인 혁신이 없다면 경제교육의 효과가 개선될 가능성도 낮다.이러한 상황에서 경제교육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 내용(content) 혁신, 장소(place) 혁신, 방법(method) 혁신, 인재(people)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혁신은 단순히 구호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혼을 쏟아낼 열정과 마지막 숨을 내뱉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끈기로 구현된다.혁신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도구의 다양화, 수혜자 확대, 콘텐츠 다양화라는 수단이 동원된다. 정형화된 교과서를 넘어 다양한 이미지, 텍스트, 교구재 등을 활용해 교육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측면에서 도구의 다양화를 지향한다.마찬가지로 수혜자 확대는 공식적인 교육기관의 범주를 넘어 비공식적인 조직과 개인의 역량을 결집하자는 시민운동의 일환이다. 콘텐츠는 기존 국내에 소개된 텍스트를 포용할 뿐 아니라 전 세계 260여 개 국가의 역사와 문화 등을 전부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1만 년 이상 기록된 인류의 역사와 유산을 모두 파악해 통찰력과 직관력을 키우고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발판을 구축하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학생신문이 경제교육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비전은 ‘경제교육 활성화로 자본주의·민주주의 고도화’다. 탐욕적이고 편향적인 경제가 아니라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들기 위함이다. 따뜻한 자본주의와 포용적 민주주의가 21세기 디지털 사회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제도이다.경제교육의 미션은 경제교육의 개념 정립, 경제교육의 인프라 개발, 경제교육의 활성화 추진, 합리적 경제인 양성 등 4가지다.경제교육의 범위와 방법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중립적 시각을 반영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작업은 없다. 인프라 개발이라는 것도 기존 교육기관과 이해관계자의 양해와 협력이 요구된다.경제교육의 활성화는 이론적이고 지루한 학습 과정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토론을 도입해 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다양한 국가나 교육기관이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경제교육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해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합리적 경제인 양성은 자연스러운 귀결로 완성할 미션이다.우리나라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질서에 대한 무지와 경제에 대한 몰이해로 암흑의 시대를 보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는 글로벌 시대 변화를 예측하고 디지털 경제의 매커니즘을 파악해 선도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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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와 정경유착으로 급성장한 우리나라 재벌기업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국내에서 절대권력으로 자리매김한 재벌은 흔히 넓은 세상에 대해 무지한 동네 골목대장 놀이에 심취한 사람을 빗대는 '방구석 여포'라는 비아냥을 들었다.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세계화 기치를 내걸고 해외로 진출한 결과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오너의 '황제식 경영'과 무소불위에 입각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한 결과는 참혹했다.노태우정부의 북방외교에 발맞춰 구 소련 지역과 동유럽에 사업을 초점을 맞췄던 대우그룹은 공중분해됐다. 삼성그룹, LG그룹, 현대그룹, SK그룹 등 해외사업을 강화했던 선두 기업 모두 자금난과 사업 주조조정을 경험했다.해외 국가의 정책이나 시장변화에 대한 정보를 무시한채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던 방식으로 밀어부친 결과였다. IMF경제위기를 경험한지 27년이 흘렀지만 글로벌 정보망을 구축해 사업을 펼치는 국내 기업이 드문 실정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대우그룹 본사 전경 [출처=위키피디아]◇ 정보는 내부 통제용이 아니다... 직원을 겁박하기보다 보호·교육하는데 수집 정보 활용해야 성장 가능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명실상부한 국내 1위 재벌인 삼성그룹의 비서실은 조직 내부를 감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삼성 직원들이 외부에서 회사에 대한 불평을 하지 않는 것은 비서실의 막강한 정보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전날 회식자리에서 내뱉은 말 때문에 다음 날 아침 불려가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직원들은 비서실에 의해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삼성의 정보력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막강하다.삼성의 정보력과 감시력은 삼성의 조직을 유지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이 있기 전까지 공개적인 삼성의 내부고발은 없었다.내부고발이 없을 정도로 깨끗한 조직이어서라기보다 사전에 적절하게 차단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비리를 제보할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내부고발자를 철저하게 감시하는 체계를 구축하여 운용한다.'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고 외친 창업자 이병철 회장 사망 이후 노조를 설립하려는 시도도 몇 차례 있었지만 각종 회유와 협박으로 전부 무산시켰다.2005년 삼성은 노조설립을 시도하는 직원의 핸드폰을 불법 복제해 도청과 위치추적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후 20년 이상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직원의 권익을 실질적으로 대변하는 노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만 접하더라도 일반 직원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서적으로 위축된 직원은 내부의 건전한 비판조차 제기할 수 없게 된다. 회사에서 지시한 업무만 묵묵히 열심히 하면서 위의 눈치만 보게 된다.고려대 경영학과 장세진 교수는 저서 『삼성과 소니』에서 이 같은 현상을 ‘공포경영’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공포에 의한 조직순응 분위기는 거대한 태풍이 오기 직전의 평온에 불과하다.공포도 단기적으로 조직을 긴장시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크다. 현재 삼성은 폭풍이 몰아치기 직전 혹은 풍선이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의 고요와 평화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삼성은 조직의 정보력을 직원을 통제하거나 감시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직원을 보호하고 교육하고 지도하는 일에 국내외에서 수집한 다양한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정보전문가는 정보를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한다. 삼성은 스스로 정보의 가치와 위험을 두려워해야 하고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시장정보 역량이 강한 마케팅 인재로 정보조직 구축... 창의적 인재가 조직혁신을 주도해야 성공 가능1998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삼성은 그룹 구조조정본부을 신설했다. 구조본은 그룹 내 계열사의 중복사업이나 비수익사업을 통폐합하거나 조정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계열사의 사업목표나 인사를 주도해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판이 거셌지만 그룹을 지배하기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요악이라고 판단했다.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이후 2006년 구조본을 해체하고 전략기획실을 신설했다. 전략기획실도 명칭만 달라졌지 하는 업무는 구조본과 별 차이가 없었다.전략기획실은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룹경영을 주도했다. 전략기획실도 이건희 회장이 2008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헐값으로 발행한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해체됐다.이후 삼성은 사장단 협의회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었고 이 산하에 비상설 조직으로 계열사 간 사업조정을 위한 투자조정위원회와 삼성 브랜드의 유지·홍보를 위한 브랜드관리위원회, 상설조직으로 업무지원팀, 커뮤니케이션팀, 법무팀을 두었다.삼성은 2000년대 들어 과감한 혁신으로 시장의 지배력을 키우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혁신의 주체가 구조본, 전략기획실, 사장단협의회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많은 전문가들이 삼성의 혁신을 주도했거나 주도하고 있는 이들 조직의 인적 구성에 대해 비평을 쏟아 내고 있다. IMF 외환위기 이전부터 삼성의 핵심세력은 재무, 인사, 감사 등 관리부서 출신들이었다.소위 말하는 ‘관리의 삼성’답게 보수적인 관리인력들이 삼성의 혁신을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관리라는 콘셉트가 먹혀들었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이들은 서울 본사에 앉아 삼성경제연구소가 제공하는 철 지난 정보로 작성한 보고서를 읽고 수백 곳의 글로벌 사업장을 가진 계열사의 사업을 분석하고 투자계획을 세운다.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시장환경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고 수립한 계획은 회장에 대한 보고용에 불과하다. 계획 따로 행동 따로이지만 심성이 착한 현장의 직원들이 노력한 결과, 실적은 항상 계획을 상회하고 있다.계획이 의미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계획은 관리조직이 월급을 받아가기 위해 작성하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고 혹평하는 직원도 적지 않다.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룹 본사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적절할까? 삼성이 사업을 영위하는 글로벌 국가에 대한 시장정보에 밝고 삼성이 생산하는 제품의 트렌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인력이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관리부서보다는 오히려 마케팅부서의 인력이 더 적절하다. 관리부서는 과거 정보에 초점을 맞추지만 마케팅부서는 미래 정보를 예측하고 활용하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기능이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는 것보다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 잘 파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기술을 이해하고 글로벌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가진 마케팅 인력이 삼성에 더 필요하다고 본다.작고한 이건희 전 회장이 주장한 '1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처럼 자유로운 사고로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진 ‘창의형 인재’가 혁신을 주도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삼성에는 창이적인 인재가 오래 살아남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자의식이 충만한 관리부서의 실세가 통제하는 삼성의 기업문화 속에서는 이들이 설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전례를 파괴하고 자유로운 사고로 무장한 창의적인 인재가 숨쉴 수 있는 기업문화로 조직을 혁신해야 한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이끌고 있는 삼성도 이러한 기업문화를 창출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의 본사 전경 [출처=홈페이지]◇ 국가정보기관과 연계한 해외 정보 수집력 강화 필요... 일본의 '철의 삼각동맹' 밴치마킹해야유럽 중부 내력인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는 196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군사 쿠테타를 지원해 시장을 보호하고 시장지배력을 강화시켰다.세계 5대 곡물 메이저로 불리는 카길은 자체적인 인공위성망을 운용해 전 세계 곡물 작황에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한다.메릴린치, 피치, 골드만 삭스 등 미국의 금융기관은 전 세계 정치, 경제정보를 수집해 파생상품을 거래하고 펀드를 운용해 천문학적인 이윤을 남긴다.선물시장에서 원유를 거래하는 브로커는 남보다 1분 먼저 수집한 중동이나 아프리카 전쟁 정보로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을 벌어들인다.이처럼 기업경영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보력을 강화해 성공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오히려 정보력을 중시하지 않는 글로벌 기업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삼성은 일본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일본은 ‘정–관–민’이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지며 국가정책과 기업경영 전략 수립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 공유한다. 이 관계를 ‘철의 3각 동맹’이라고 부른다.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이런 기조가 탄생했고 조선강제병합,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강화됐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1950~70년대 일본의 제품이 전 세계 시장으로 뻗어 나가면서 더욱 굳건히 유지됐다.실제 일본이 부존자원도 많지 않고 뛰어난 국민성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단기간에 아시아의 맹주, 장기간 G2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탁월한 정보 수집능력과 정관민의 협조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현재도 일본은 국가이익이라는 관점에서 기업과 정부가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관료도 기업인에게 뇌물을 요구하기보다 해외 진출에 도움이 되는 외국의 정책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한국은 군사독재 뿐만 아니라 문민정부 이후에도 국가정보기관과 기업의 잘못된 밀월로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했다. 정보기관의 정보는 정치인과 관료가 뇌물을 받거나 이권을 챙기는 도구로 활용됐다.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명박(MB)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원의 교환근무도 취지는 좋지만 이들이 부정부패의 고리역할을 수행했다는 의심을 받는다.MB정부 이후 보수를 표방한 박근혜정부와 윤석열정부도 기업과 유대를 강조했지만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다 많았다.삼성을 포함한 국내 대기업은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공무원을 포섭해 관리한 전력이 있기 때문에 관민협력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일본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국가이익’의 차원에서만 협력하고 양자는 본분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고 기업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분만 잃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삼성의 국내 정보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지만 해외 정보력은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 해외 법인이나 해외 주재원이 수집하는 정보만으로 글로벌 삼성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렵다.대기업이 해외사업을 성공하려면 국가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권도 ‘우리나라 기업이 잘되면 국가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현재와는 차원이 다른 ‘글로벌 비즈니스 정보시스템’을 재설계해 구축하고 해외 파견 직원의 정보마인드 교육과 정보역량강화 훈련도 필요하다.해외에 나가는 우리나라 비지니스맨도 소양을 가진 엘리트, 1등주의, 최고의 전문가라는 자세를 갖고 활동한다면 일당백의 효과를 낼 수 있다. 글로벌 정보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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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을 강조하며 대기업 우선의 성장정책을 펼쳤다. 표과가 없어 사장됐던 용어를 다시 꺼집어 낸 것은 2022년 권력을 쥔 윤석열정부였다.2022년 7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규제·세금 완화, 기업 투자 제고, 경제 활성화, 세수 확충이라는 낙수효과로 경제정책의 초점을 맞춘다고 밝혔다.기업에 대한 규제완화·감세로 투자를 이끌어내고 고용을 창출하며 소비가 증가하는 경제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이 낙수효과의 목표다.대기업은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지만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경제가 낙수효과로 좋아졌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오히려 대기업의 편중이 심화되며 지속가능 성장의 기반이 붕괴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대기업이 협력업체와 상생하는 기업문화를 정립해야 한다. ▲ 삼성문화 4.0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표지 [출처=글로세움]◇ 창업주의 동업 실패가 협력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제공한 요인... 2~3세 경영철학도 바뀌지 않아최근 삼성그룹의 간판 기업인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가전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 많은 협력업체와 공조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배려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삼성의 불공정한 거래에 대한 불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삼성이 협력업체와 삐그덕거림은 이병철 회장의 초기 동업의 실패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동업에 대한 생각과 철학, 행동방식이 상생하지 못하는 기업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병철 회장은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건강상의 문제로 학업을 중단한 채 귀국해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시작했다.물산의 중심지인 대구에서 쌀과 건어물 등을 사들여 만주나 일본으로 파는 무역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전쟁물자가 부족했고, 만주도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조달하면서 수요가 많았다.식민지 조선에서는 일본의 곡물수탈 정책에 따라 쌀의 매입이 상대적으로 쉬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과거의 전력 때문에 삼성은 일본의 조선식민지 정책의 수혜자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있지만 약간 억지로 보인다.일본이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삼성상회의 사업은 번창했다. 해방 이후인 1948년에는 서울로 활동무대를 옮겨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했다.해방 이후 열악한 국내 산업시설과 만성적인 부족에 시달리던 소비재 수입을 위해 무역업에 주력했다.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전란으로 초래된 물자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수입대체 정책을 잘 활용했다.1950년대 초 설립한 삼성물산, 제일제당, 제일모직은 밀가루, 설탕 등 수입에 의존하던 생활필수품을 국산화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1960년대 들어 삼성은 정부의 경제계획에 재빠르게 편승했다. 당시 정부는 후진적이고 소규모인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몇몇 업체에 독점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신규 업체의 진입을 규제하는 방식을 취했다.정부 정책에 따라 재벌기업은 어떤 산업이라도 무조건 진출해보자는 식의 전략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재벌의 문어발 기업경영의 출발점이 됐다.재벌은 1970년대 중화학공업, 1980년대 조선과 전자산업 등의 영역에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하게 됨으로써 관련 계열사를 계속해서 늘릴 수 있었다.1979년의 2차 오일 쇼크, 1980년대 초 3저 현상도 국내 기업이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86년 아시아게임, 1988년 올림픽을 계기로 국가이미지가 상승되면서 대기업도 해외시장에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이병철 회장의 초기 경영 특징 중 하나는 위험부담 회피를 위해 적극적으로 동업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1962년 LG그룹 구인회 회장과 동양를 같이 인수하면서 동업을 시작했다.하지만 양측에서 파견한 직원 간 의견충돌이 잦아지자 구인회 회장은 '돈'보다는 '인간관계'가 우선이라면서 지분을 정리하고 떠났다. LG는 인화경영을 중시한다.효성그룹의 조홍제 회장과의 동업은 더욱 복잡하고 길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병철 회장과 조홍제 회장 두 사람은 1949년 삼성물산공사, 1954년 ㈜제일모직공업을 같이 설립했다.1960년 3월 동업관계가 정리되었지만 지분에 대한 다툼은 오래 지속되었고 1965년이 되어서야 종결됐다. 조홍제 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갖고 있던 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지분을 받는 대가로 제일제당 등의 지분을 포기했다.2000년 발간된 조홍제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 이병철 회장과 동업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이병철의 집필한 『호암자전』과는 다른 내용이 있어 진위 여부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지는 판단하지 않는다.이병철 회장은 1950년대 중반 제일제당의 설탕을 독점판매하던 동양그룹의 이양구 회장과도 동업을 진행했다. 이들의 관계는 1956년 이양구 회장이 삼척시멘트 인수를 주장하면서 무너졌다.이양구 회장은 정부의 경제재건 계획에 따라 시멘트의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견하여 인수를 주장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반대했다.결국 이양구 회장이 제일제당의 주식을 팔고 삼척시멘트를 독자적으로 인수해 동양세면트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러나 이후 동양세면트는 사업환경 악화에 따른 경영부실로 동양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경영 측면에서 보면 이병철 회장의 인수결정 반대가 옳았다고 본다.기업문화에는 창업주의 경영철학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병철 회장이 어떤 이유에서든 동업자와 오래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거나 불만족하게 동업을 청산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삼성에 상생의 기업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것은 사업 초창기 창업주의 경력과 고집이 반영됐다고 본다. 삼성 내부에 ‘내가 최고’, ‘나만이 옳다’는 제일주의가 팽배하면서 파트너와 협력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상생 마인드가 부족한 기업문화는 삼성의 사업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병철 회장 이후 2대인 이건희 회장, 3대인 이재용 회장도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답습해 개선되지 않았다.◇ '초과이익공유제'는 사회주의 용어라고 비판받아...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동물' 신세가 된 중소기업한국 대기업은 사업 전망이 불확실하거나 사업 규모가 작을 때는 협력업체에 맡기다가 사업성이 확실하게 보이면 바로 합병하거나 회사를 설립한다.기술이 괜찮은 벤처기업이 있으면 어떻게든 독점 납품계약을 체결한다. 처음에는 매출을 보장해주다가 납품업체를 다변화하는 방법으로 매출을 줄여 나간다. 혹은 매출을 보장해주는 댓가로 터무니없는 원가절감을 요구한다.핵심 기술자를 스카우트해 위장 협력업체를 차려 기존 협력업체를 고사시키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국내 대기업은 대부분 협력업체와 분쟁이 빈발한다.특허권을 침해했다는 불평에서부터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물량 줄이기, 거래단절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소위 말하는 ‘기업 프렌들리’ 정책이 대기업 우선주의 정책으로 변질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더 열악해졌다.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상승해 오히려 납품단가를 더 올려 받아야 하지만 대기업은 수출채산성을 들먹이며 납품단가를 강제로 깎기 일쑤다.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대기업의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고환율정책을 유지했지만 그 혜택은 대기업에만 집중됐다.당시 이명박정부는 대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고 이익을 내면 중소기업도 덩달아 돈을 벌고 국민소득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대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협력업체와 동반성장해야 한다. 대기업은 제품 기획력과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여 초과이윤을 창출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대기업의 불합리한 중소기업 처우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례로 입증할 수 있다. 대기업은 덩치가 크고 위험을 회피하기 때문에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지 못한다.2011년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낸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초과이익공유제’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들고 나온 것도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을 목표로 한 것이다.사회주의 용어라는 비판에서부터 협력업체가 너무 많고 비중을 측정하기 어려워 이익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았다.당시 여당의 주요 정치인, 보수 언론, 보수 경제학자 등이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해 반대했다. 대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이라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지만 무조건 반대했다. 그러나 용어의 적절성 논란을 뒤로 한다면 시도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부 경제전문가는 국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관계를 동물원의 ‘사육사’와 우리 안에 갇힌 ‘동물’에 비유한다.사육사는 갇힌 동물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먹이는 주지만 관리하기 힘들 정도로 충분히 주지는 않는다. 야성을 잃은 동물의 능력이 서서히 퇴화하듯이 제품개발과 경영혁신의 열정을 잃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핵심경쟁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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