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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글을 조리 있게 잘 쓰는 사람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말은 상대방의 감성적인 측면에서 호소하는 반면에 글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 원칙적으로 좋은 글은 독자나 시대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사람은 태어난 이후 먼저 말을 배우고 학습 능력을 갖추는 2~3세가 되면 글자를 익히게 된다, 글쓰기용 책을 보면서 내용을 베끼는 것부터 글쓰기를 시작한다. 잘 알려진 글이나 일상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단어나 문장을 배우면서 말솜씨도 점차 향상된다.어린아이는 일기를 쓰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이가 들어가며 점차 수필·소설·연설문·논문·전문 서적 등과 같은 난이도가 높은 글에 도전한다. 평범한 사람은 하루일과를 정리하는 일기 정도 쓰며 인생이 끝나는 편이다,직업 작가로 등단하면 수필이나 소설처럼 사람에게 재미를 선사할 글을 쓸 기회가 많이 생긴다. 글쓰기 문제점과 실력 향상 방안을 찾아보자. ◇ 글의 목적에 따라 다른 방식 선택해야 독자 설득에 유리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자 하는 사람은 논문을 작성해야 한다. 교수가 되면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터득한 지혜를 포함한 논문을 작성해 학회지에 발표한다. 논문은 수필이나 소설과 달리 글의 구성이나 문장의 화려함보다는 다른 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차별화된 내용이 중요하다.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작가나 언론인이다. 기자는 매일매일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소개하는 스트레이트 기사부터 칼럼·사설과 같이 사회현상에 대한 개인적 판단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는 고차원적인 글도 감당해야 한다.논문이나 기사의 차이점은 명확하다. 학자가 집필하는 논문은 새로운 지식이나 세상을 관통하는 지혜를 포함해야 가치를 인정받는다. 반면에 기사는 있는 사실(fact)을 꾸밈없이 담백하게 나열하며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논문은 다른 글에서 보지 못하는 새로운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고리타분하고 무미건조한 문체로 재미가 없어 여간 집중해 읽지 않으면 마지막 문장까지 도달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평상시에 어려운 논문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기사는 일반인이 사용하는 평범한 단어와 짧은 문장으로 읽기에는 부담이 없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유용한 지식이나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과거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언론은 날카로운 눈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기반으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고 사회현상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1990년대 정보화 사회가 도래한 이후 논문과 기사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인터넷에 각종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며 학자의 논문조차도 일반 상식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물론 핵물리학이나 전자공학과 같이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도 있지만 대학 수준의 학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게 느끼지 않는다.언론은 시대적 소명 의식을 기반으로 사회 아젠다(agenda)를 설정해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참여할 공론장을 만들어야 하지만 이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그 역할을 빼앗겼다.페이스북이나 엑스(X)와 같은 범용적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블로그, 인터넷 카페, 유튜브와 같은 채널이 공론장으로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대체하고 있다.SNS 사용자는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자·작가·기자와 같은 전문가의 수준에 필적할 능력을 보유하기도 한다. 실제 SNS에서 일상을 소개하던 일반인이 전문 작가로 등단하고 언론사의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 고려할 3가지 측면 [출처=iNIS]◇ 내용·독자·필자 3가지 측면 충족해야 좋은 글로 인정받아글은 혼자만 읽기 위해 쓰는 일기만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작성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가치가 없는 글이라고 평가하게 된다. 즉 훌륭한 글은 내용적 측면, 독자 측면, 필자 측면 등이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룰 때 완성된다고 본다.먼저 내용적 측면은 충분한 이해와 쉬운 용어, 실증 자료와 근거의 제시, 원인과 결과의 구분, 사실과 판단의 구분 등을 고려해야 한다.수필만 보더라도 필자가 자신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이나 주제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면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조차 주기 어렵다.문장을 구성하는 용어나 단어도 가능하다면 쉬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논문이나 사설과 같이 전문적인 글이라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간략한 용어 설명을 곁들여야 한다.특정 이벤트가 어떤 시간·공간·논리 순으로 진행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결과가 나왔는지 명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사실(fact)은 ‘실제로 존재하거나 일어난 일‘을 말하며 판단은 필자의 주관적 견해다.다음으로 독자 측면은 주제에 대한 이해도 인식, 지적 능력, 개인적 선호 반영, 시간적 한계 고려로 충족해야 한다. 글을 쓸 때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가 주제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인식해 전문 용어를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일상 용어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한다.지적 능력은 일반인이 사용하는 IQ와 달리 문자의 이해도를 말하는 리터러시(literacy)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충분하다. 정치적 성향이 투영되는 언론의 칼럼이나 사설이라고 해도 독자의 개인적인 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신문은 특정 독자층에 편향된 논조를 견지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독자가 글을 읽기 위해 기꺼이 투자하고자 하는 시간의 길이도 글의 분량이나 난이도를 결정하는 주요인이라고 봐야 한다. 출·퇴근을 하는 대중교통수단에서 가십거리로 읽어야 하는 글이라면 분량이 짧아야 하지만 내용도 어려워서는 안 된다.반면에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 통찰력을 얻도록 의도된 심층기사나 기획 기사는 분량이나 용어의 선택에 제약이 많지 않다.마지막으로 필자 측면은 편견의 배제, 주관적 사고의 타파, 목적의식의 명확화, 적시성·적절성의 확보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우리나라 사람은 서양인에 비해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 충분하지 않은 지식과 좁은 시각은 필연적으로 편견을 낳는다.편견은 일견 필자의 확고한 신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지만 주관적 사고를 견지해 객관성을 잃기 때문에 우호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어떤 글이든 독자가 있으므로 이해나 설득과 같은 목적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글쓰기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역술가들은 사람이 태어난 시와 날짜 등을 사주팔자로 부르며 미래를 점친다. 종교인도 역술가와 표현 방법이 다를 뿐 운명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필자도 독자에게 글을 전달하는 시점을 정해야 하고 내용이 의도에 적절한지도 검토해야 한다.위에서 제시한 원칙을 준수해 쓴 글은 간단명료한 내용, 쉽고 친숙한 용어, 체계적인 설명, 충실한 자료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일반적인 글뿐만이 아니라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국가의 최고정책결정권자(VIP)에게 제출하는 보고서도 동일한 원칙에 따라 작성된다. ◇ 전문가보다 뛰어난 일반인 넘쳐나며 옥석 가려지는 중동서고금의 인재들이 쓴 다양한 글을 읽어보면 ’훌륭한 글‘이 갖춰야 할 요건을 충족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정 비평가나 역사학자가 좋은 글이라고 평가한 경우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명한 비평가라고 해도 주관적인 평가로 일관해 비난을 받기도 한다.학자나 전문가의 글은 내용은 좋으나 좋은 글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사례가 다수다. 정치가의 명연설도 시대와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호불호(好不好)가 달라진다. 공무원이나 직장인의 보고서가 실용성 측면에서 보면 가장 전문성이 뛰어난 편이다.인터넷이 발달하며 전문가의 글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SNS에서 자칭 ’글쓰기 고수(高手)‘로 불리는 사람이 넘쳐나며 옥석이 가려지고 있는 중이다.학력이나 자격증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판단된다.문제는 세상은 많이 변했고 독자의 수요는 다양한데 글을 쓰는 필자들의 노력이 이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다. 인터넷에 지식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글은 많지 않다. 인터넷을 ’쓰레기의 바다‘라고 지칭하는 이유다.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라“고 말했다.이 문구를 정보화 시대의 글쓰기에 적용하면 ’세상에 좋은 글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스스로 세상에 이로운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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